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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 모두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살고 싶다는 마음도 절실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제대로된 방향을 제시했더라면 어쩌면,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는 방향을 짚어주는 대신 길을 끊고 사람들이 제시한 문제들을 제거함으로써 죽음으로 이끌었다.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 앞서 말했듯 그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끝까지 살도록 도와주려고 하지만 죽음을 이야기한 사람은 고민 없이 포기하고 가볍게 여긴다. 설득하기엔 지쳤다. 그의 앞에서 쉽게 죽음을 이야기 해서는 안된다.

 

다섯살 차이가 나는 입양한 여동생이 있다. 상당히 아끼고 있으므로 다가올 죽음을 생각할때는 동생 걱정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가명을 쓰게 된 이유에는 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별명 탓도 있었지만 혹 동생이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듣더라도 그게 자신인 것을 모르길 원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무래도 좋아, 그들은 자신이 무얼해도 지지해줄테지만 동생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네게만큼은 죽을때까지도 다정한 오빠이고 싶고, 동화 속 왕자님이고 싶고, 평범하고 떳떳한 사람이고 싶어.

 

불치병으로 인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그 누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 했던가….. 

나는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혼자서 죽고 싶지 않다. 그 마음을 스스로 깨닫지는 못했지만-알면서도 애써 부정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데에 큰 영향을 끼쳤고, 끼칠 것이다. 그가 전한 말로, 행동으로..

 

친구의 죽음 이후로 약 1년 동안은 꽤 많은 컨설팅을 했으나 돌연 1년 전부터 컨설팅을 멈추다시피 했다. 열 아홉에 둘, 스물에 하나. 건강상의 문제도 있고, 어떻게 알아낸건지 그의 신상이 비밀리에 사이트들을 돌아다녀 의뢰인의 주변인이 협박하는 일도 적지 않게 생겨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동화 속 가족과 같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성적 우수, 교우 관계 원만, 특별한 재능은 없어도 특별히 못하는 것도 없는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완벽하다면 완벽한 인간의 삶을 살아왔다. 건강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워지리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단 말이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15세 여름/

5년 전 비 오는 날의 여름, 학원을 마치고 동생이 먹고 싶다던 제과점의 쿠키를 사서 돌아가던 길에 불현듯 심장이 저릿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정신을 차리니 길바닥에 주저 앉아있었다. 저 멀리 굴러간 우산과 비에 젖은 쿠키 박스를 멍하게 바라보던 그는 놀라는 기색 없이 천천히 일어나 우산을 집어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흔하고도 흔하지 않은 이야기다. 생각보다 검사가 길어지고, 몇 번 더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권유 받고, 그 모든 검사 끝에 결국 완치 가능성이 없는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 것.

그는 여상한 얼굴로 손톱을 뜯다가, 입원치료를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밤을 울었다는 건, 혼자만의 비밀이다.

 

죽는건 싫어, 무섭지는 않아, 아냐 무서워, 살고 싶어, 죽고 싶다고 생각한적도 없어!

 

/17세 가을/

그가 처음 자살을 도운 학생은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였다. 방학이 끝난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옆자리가 비어있는게 의문이었던 그는 쓸데없이 착한 성격을 누르지 못하고 친구 집에 찾아가고 말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열린 문 틈으로 컥컥 거리는 소리가 들려 살금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난장판이 된 거실과, 흔들리는 샹들리에, 그리고 그 곳에 밧줄로 묶여 목이 매달린채 버둥거리는 친구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안 돼!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힘겹게 의자를 끌어와 밧줄을 잘라내고 바닥에 떨어진 친구를 끌어안았다.

 

학대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결심했다는 친구를 안고 진정시키려 했고 그걸로 당장은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지만 친구의 결심은 생각보다 짙었다. 그가 이대로 도망치더라도 친구는 죽을 것이고, 달래고, 빌어도 친구는 죽을 것이란 직감이 스쳤다. 이미 이 집에 발을 들인 순간 한 인간의 죽음에 엮이고 만 것이다. 친구의 울음소리에 멍해진 머리속에 ‘어차피 죽는다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그 과정을 좀 더 부드럽게 수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파고들자 그는 목소리를 낮춰 제가 생각한 계획을 친구에게 속삭였다.

 

...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친구는 그리 오래 고통 받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그는, 그는…

 

이런 것이 안식일리 없어!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저지른건 살인인가? 

나는 그 누구의 죽음도 바란 적 없었는데! 그것도 친구의 죽음을!


 

/18세 겨울/

그 날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타인의 죽음이 따라 붙기 시작했다. 이상하리만치 자신의 삶을, 고통을 상담하는 이가 늘었고, 그 모든 상담의 끝은 죽고 싶다… 였다. 처음에는 말렸고, 설득했고, 울며 빌기도 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짓을 반복하니 그에게 죽음은 하나의 방법이 되어갔다.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 그저.. 다른 방법들과 달리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슬퍼질 뿐. 하지만 제 슬픔을 이유로 사람들의 고통을 연장시킬 수는 없으니 그는 눈물을 닦고 수면제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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