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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지만 가족들끼리의 결속이 강한 탓일 것이다. 자신들의 일과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다른 이의 접촉을 꺼리는 것. 알마 키리에 또한 그러하다. 남들에게 다가가나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문을 닫아버리고는 한다. 그래서 누군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꽤나 계산적으로 생각한다.

 

[장례지도사]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찾아오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남들에 비해 죽음 자체에 의연하게 군다. 곁에서 많이 보고 자란 탓인지 죽음 자체에 무감각하고 죽은 이에 대해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점이 직업적인 입장에선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개인과의 대화에서 이러한 생각이 비쳤을 땐 경멸의 눈빛을 받기 십상이었다. 본인은 그런 생각을 숨길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 본인의 생각을 잘 굽히지 않는다. 

절망이 도래하여 세상이 혼란스러워짐에 따라 그에 희생되는 사람들 또한 늘어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흔한 것이었죠. 누군가의 손에 제대로 인도되지 못 한 죽음은 너무나도 많았고 이는 또 다른 절망을 낳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던 한 장의사는 그들을 거두어 영혼을 기리고 그들을 위한 묘지를 세웠습니다. 그의 행보는 절망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계속되었고 다음 세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그리고 그 아들의 딸에게. 그런 의지를 전해 받은 것이 알마 키리에였습니다.

 

알마 키리에는 좁고 폐쇄적이었던 마을 묘지 옆에서 자라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자신들은 희생된 이들을 위하며 기리는 존재들이며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이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한다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부모님처럼 알마 키리에 또한 죽은 이들을 위해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죽은 이들의 마지막 길을 누구도 슬퍼하고 비극적으로 느끼지 않도록.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나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일을 이어나갔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다른 이들을 품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기쁨은 또 새로운 동기가 되어 누군가를 이끌어주는 손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살아있는 사람들이 버티고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되지 않아 사소한 계기로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텅 빈 누군가의 식장 안에서. 자신들이 아무리 잊혀가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평화가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나 그들의 존재는 외면당하기만 했습니다. 그 외면이 자신이 하는 일을 의미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사로잡게 되고 허무함은 커져만 갔습니다. 몇 해가 지날 동안 속에서 뒤틀릴 대로 뒤틀린 감정은 사람들을 향한 모멸감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알마 키리에는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이들에게 더한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동기는 죽은 사람들에 머물러있습니다. 그렇기에 죽은 이들을 마치 자신의 친우처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는 인간을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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